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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목소리의 형태, 선과 악에 대하여

만두부의 일상 2021. 8. 29. 18:08

* 영화 목소리의 형태를 보고 남기는 개인적인 사색과 감상평입니다. 감성주의, 스포주의, 내 생각주의

영화 목소리의 형태

말도 안되는 영화 속에나 존재하는 이야기.
마치 드라마 '꽃보다 남자'를 연상시킨다.

자신을 괴롭힌 왕따가해자와 사랑에 빠지고,
진정한 친구가 된다는 이야기.

일본의 정서를 잘 몰라서 그런지, 말이 안된다고 생각했다.



주인공 이시다가 피해자 니시미야 쇼코를 다시 만나
이런 말을 하는 장면이 나왔다.

"나와 너는 친구가 될 수 있을까?"

이 소리 듣자마자 난 이런 생각을 했다.

'헛소리하네, 왕따 시켜놓고 갑자기 웬 친구?
한국 영화였으면, 저기서 피해자 쇼코의
자비없는 복수극이 시작됐을텐데. '



실제로 '왕따가해자의 정신승리'라고 욕을
먹기도 했다고 한다.

하긴, 왕따 가해자가 피해자를 찾아가서
사과를 한다는 것 자체가, 욕 먹을만 하다.


피해자 입장에서는 가해자를 마주하는 것조차
트라우마가 살아나는 고통일 수 있고, 사과를 듣는다고
그때의 상처가 회복되는건 아니다.

오히려 가해자의 마음만 편해지고, 피해자에게는
또 한 번 고통스러운 기억이 되살아날 수도 있다.

쉽게말해, 가해자만 좋은 일이 될 수도 있다는거다.


인과응보

이 영화에서 잘 드러나는 메시지이지만,
이게 영화가 주는 메인 메시지는 아닌듯하다.

왕따가해자 이시다는 결국 똑같이 왕따를 당하게 된다.




Tmi 생각

인과응보라는게 과연 존재할까?

나는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학창시절 소위 일찐으로 불리던 친구들은,
막장인생이 된 친구들도 있고
개과천선해서 잘 사는 친구들도 있다.

그렇지만 그들을 가까이서 보지못했기에
그들의 고통을 못봤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내 주변의 가까운 사람들은,
자신의 잘못을 그대로 돌려받지 않는 사람을 못봤다.

살다보면 누구나 힘든 일을 겪는다.

그럴 때보면, 과거에 똑같은 잘못을 한 사람들은
오히려 본인의 잘못이 되돌아왔다는 생각에
더 힘겨워하는 듯 했다.


'죄책감'이라는 감정이 제일 무서운 감정이라고 생각한다.

상대가 잘못을 했다면, 화를 내고 분노하고
상대를 탓하면 된다. 물론 이것도 힘들 수 있다.

하지만 모든 잘못의 화살이 나에게 꽂혔을 때,
모든걸 내 탓을 하게 될 때,
그건 누군가 해결해줄 수가 없는거다.

나 자신의 잘못이고 내가 만든 죄책감이기에
내가 나를 이겨야 하는것이다.

이게 심각해지면, 영화 속 이시다와 쇼코처럼
본인이 남에게 짐이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본인의 삶을 놓게된다.

공감이 많이 가는 주인공들의 감정선이었다.



주인공 이시다의 감정선에 대한 공감

난 왕따 가해자가 되어본적이 없다.
그렇지만 살면서 남에게 상처를 준 적이 있고,
반대의 상황을 똑같이 겪으면서 느낀 감정들이 있었다.

그래서 영화속 이시다의 감정선에 깊이 공감했다.


주변 사람들의 얼굴에 X 표시를 그려놓은 모습,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리지만 멍하니 무시하는 모습.


모두 크게 공감이 되었다.


자신을 가치없는 사람이라고 느끼고,
타인도 모두 믿지못하고 느끼려하지도 않는다.

타인을 내 삶에 들이지 않는다.
그들이 싫은 것도 아니다, 그냥 관심이 없다.

사실 나에게 손을 내미는 사람도 많지만,
내 마음에 들일 여유조차 없는 삶.

나를 싫어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신경쓰고 상처받을 힘조차 없어지는 순간.

그런 순간이 올 때가 있었다.


선과 악, 착한 사람과 나쁜 사람을 구분지을 수 있을까?

나는 주인공 이시다를 나쁜 사람이라고 보지 않았다.
살면서 누구나 잘못을 저지를 때가 있다.

그 잘못을 반성하고, 변화하려는 사람은 대단하다.

영화에서도, 초등학생 시절 이후 변화한 사람은
주인공 이시다밖에 없어보였다.



니시미야 쇼코

영화만 보면 '선한 인물'로 보여진다.


우에노 나오카는 이 인물을 굉장히 싫어한다.

"넌 민폐덩어리야, 너만 없었으면 아무 일도 없었을거야."

사실 쇼코가 직접적으로 잘못한 건 없지만,
누군가의 입장에서 보면 민폐덩어리로 보일 수도 있다.

우에노 나오카의 입장에서는, 행복했던 초등학교 시절의
추억을 방해하는 굴러들어온 돌덩이일 뿐이다.
그리고 주인공 이시다를 죽음의 위기로 몰아넣은
의도치 않은 민폐덩어리로 보일 수도 있다.

이 인물 역시 변하지 않았다.



누군가가 자신에게 피해줘도 아무 말 없이 웃고 있는 것.
본인이 잘못하지 않았음에도 자책만 하는 것.
그러다가 결국 죽음을 선택해 모두에게 상처를 주는 것.


한국 사회에선 이러한 사람을 '답답하다'라고 여긴다.


등장인물 쇼코를 비난하는 것이 아니다.
사실은 내가 학창시절 저런 학생이었다.

사람들은 내가 착하다고 말했지만, 어느 순간
나는 민폐덩어리로 전락했다.

누군가는 '당하면서 사는 일'을 매우 바보같다고,
답답하다고 표현하며 나를 비난하기도 했다.

과거에 우울증에 빠져 힘들어하는 나에게,
누군가는 '너 때문에 가족들이 힘들어한다.'며
나를 비난하기도 하였다.

나를 민폐덩어리, 골칫거리로 여겼다.


한국사회에서 바보같이 착하게 사는 사람은,
그냥 답답하고 당해도 싼 사람이고
가끔은 민폐덩어리로 여겨진다.
모두들 그런 성격을 고쳐야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고쳤다!

'너 예전엔 착했는데, 성격 왜그렇게 됐어?'
'예전엔 이렇게 해줬는데, 왜 지금은 안해줘? 서운해.'

어쩌라는건지 모르겠다.

그렇지만 굉장히 행복하게 살고있다.
편하게 사는 쌍년이 되고싶다.






우에노 나오카

싸가지가 뒤졌다.

죄없이 착한 사람을 괴롭히고 남탓만 한다.
본인의 잘못은 되돌아보지 않는다.
거기다 시미다가 왕따 당할 때 쳐다도 보지 않고,
본인은 아무 잘못 없는 척한다.

그래놓고 나중에 시미다가 변화하고 잘 사는 듯하자,
뜬끔없이 나타나서 그런 시미다를 비난한다.
왜 이제와서 쇼코랑 친구가 되냐며,
예전처럼 쇼코를 괴롭히지 않냐면서 말이다.

커서도 싸가지 없이 쇼코에게 상처주고
폭력을 행사하고 싸이코처럼 행동한다.

얘도 변화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한국사회에서 이런 성격의 사람은
살아가기 굉장히 편하다.

저렇게 남탓만하고 싸가지 없이 살면 굉장히 편하다.
적어도 쇼코보다는 살기 편하다.

적어도 자책하며 힘들게 살지 않을 수는 있다.

저런 사람들의 편에 서주는 사람들도 많다.
주변에 사람도 많고 잘 이끈다.
원래 싸가지 없으니 조금만 잘해줘도
'오~ 생각보다 착한데~'라는 소리를 듣고산다.

바로 내가 이런 성격으로 살아본 경험이 있어서 잘 안다.
(물론 저따구로 죄없는 사람을 괴롭히진 않았음)


사하라 미요코

유일하게 왕따당하는 쇼코를 도와준 인물이다.
그렇지만 며칠안돼 힘들다고 전학가버렸다.

무슨 일만 있으면 도망가버린다.

이 인물도 변화하지 않았다.

극중에서는 굉장히 선한 인물로 표현되지만,
이시다가 한 말이 기억에 남는다.

"넌 또 힘들면 편하게 도망갈거잖아"

맞는말이다.

쇼코는 이 친구에게 지금부터 변하면 된다고하며
훈훈하게 끝났지만, 사람이 변하기는 쉽지 않다.







나쁜 짓을 해도 변하기만 하면 다 해결된다는
소리는 아니다.

변화하고 고친다고해서 이시다의 과거의
잘못이 지우개처럼 싸악 사라지는 건 아니다.


내가 말하려는 것은, 선과 악이라는 것이
어떤 입장에서 바라보는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절대적인 선과 악은 없다.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이유는 그냥 내가 저렇게 생각하고 살다보니
인생이 굉장히 편하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게 천하의 쌍년이라도,
나에게는 둘도 없는 천사같은 친구가 될 때도 있다.

대다수의 사람이 믿고 따르는 천사같은 사람이라도,
나에게는 천하의 쌍놈이 될 수도 있다.

그래서 나는 내 주변의 사람들이
남들에게 어떤 잘못을해도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

남에게 아무리 쓰레기 같은 사람이라도,
나에게 좋은 사람이면 그냥 좋은 사람이다.




요즘은 그냥 이렇게 생각하고 살려고한다.

혹자는 이렇게 말한다.
'남에게 쓰레기 처럼한다고?
그럼 너한테도 나중에가면 그렇게 행동할 수 있어.'


저 말도 어느 정도 맞았다. 그러나 이제는 지친다.

반대로, 남들에게 너무나도 평판 좋은 사람이
나에게만은 그 가면을 벗어던지고
크게 엿먹인 적이 많았다.
또, 남들에게 평판이 안좋아도 나에게만은
천사같은 사람도 많았다.


그냥 내가 편한대로 살려고한다.
내가 행복하고 내가 좋은대로 살려고한다.

편해지고 싶다.




영화를 보고 난 후 걸려온 동창의 전화
- 학교폭력에 대하여

하필이면 영화를 보고 난 후
고딩시절 친구가 전화가 왔다!

그래서 더 많은걸 느낄 수 있었다.


그 친구는 학폭 가해자이자 학폭 피해자였다.

우리 학교에는 왕따가 일상처럼 벌어졌고,
왕따를 당해보지 않은 학생이 한 명도 없을 정도 였다.



자랑 맞다. 난 학창시절에 왕따 당하는
친구가 있으면 그냥 두지 못하고,
정의의 용사처럼 항상 손을 내밀었었다.

그래서 같이 왕따 당한적도 많았고,
힘들어서 용기를 못내고 방관자가 된 적도 있었다.



전화온 친구도 내가 도와줬던 친구였다.
그 친구는 나의 그 도움을 평생잊지 못하는 듯하다.

중 2때였는데, 10년이나 지났는데
매년 그 이야기를 하며 나에게 고맙다고 한다.




그 친구는, 그 때 왕따 기억을 아직도 기억하고
큰 상처였다고 나에게 하소연을 했다.

왕따 주동자 친구가 조금이라도 잘나가면
바닥까지 끌어내릴거라고 화를 냈다.

나도 겪어봤기에 그러한 분노는 이해를 했다.
그 일들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고,
아직도 크게 아파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나에게 본인이 왕따시킨 친구들에 대해서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본인이 왕따시킨 친구들은, 모두 이유가 있어서
본인이 왕따를 시킨건데, 억울하다고 했다.


참... 황당했다!

거기다 내가 도와줬던 왕따당했던 다른 친구를 들먹이며,
자기가 언제 그 친구를 왕따시켰냐며,
학폭으로 신고당한게 억울하다고 했다.



그렇지만 나도 내로남불이 심하기에,
함부로 그 친구에게 뭐라할 수 없었다.

나조차도 용기가 없어서 학교폭력
방관자였던 시절이 있었기 때문이다.

자신이 왕따시키고 상처줬던 친구들을
한 명 한 명씩 말하며,
그 친구가 '왕따당할만한 잘못'을 했다고 말했다.


음.....
들어보니 큰 잘못이 아니었고,
왕따 시킬것이 아니라 그냥 대화로 풀면 되는 것이었다.

그 시절 친구는 모두에게 상대의 잘못을 퍼트리고
상대방을 반에서 혼자가 되도록 주도한것이 맞다.
그런데 본인은 아니라고 그랬다.


그래서 나는, 그 친구를 비난하기 보다는
그냥 그 뒷담대상자들이 '나에게만은 착한 사람'
이었다고 말해주었다.


그 친구는 '너가 착해서 너한테는 안그랬겠지'
라고 말하며 본인이 말하다가 본인이 당황한 듯 했다.


황급히 말을 돌렸고, 그렇게 전화는 끝이났다.









어쨋든 그 친구에게 내가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다니 다행이었다.


나도 누군가에는 천하의 쌍년인데,
그래도 나를 항상 좋게 바라봐주는게 고마웠다.





나도 언제는 학교폭력의 방관자였기에,
여기에 대해서는 정말 할 말이 없다.
모두를 도와줄 수는 없었다.
나의 미숙함 때문이었다.

의식의 흐름대로 글을 썼다.




사실 나도 대학에선 평판이 바닥이지만,
누군가에겐 '최고로 좋은 사람'이라는 평을 듣는다.

그저 감사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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